통영 연대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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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33회 작성일 20-03-02 22:47본문
오늘은 일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에 연대도의 어촌계장님, 부녀회장님 등 여덟 분 정도가 요추협착과 목 디스크 등을 병원에 치료받으러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연대도는 통영에 있는 작은 섬으로, 인구가 70여 명 정도입니다. 조선시대 왜적을 경계하기 위한 수군의 봉화대가 있었고, 봉화대의 옛말인 연대(烟臺)에서 연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요즘 관광지로 인기가 꽤 좋다고 합니다.
멀리서도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으시고 오랜 시간 들여 찾아오신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인데, 마침 이 인연으로 얼마 전에 아이들도 데리고 연대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병원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출발합니다. 통영시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달아마을 선착장에서 15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데 여객선 갑판 위에 서 있으면 벌써부터 겨울바다 분위기가 물씬 나지요.
연대도에서 배를 내리면 시간이 꽤 늦어서 벌써 오후 4시입니다. 섬으로 들어오면서 선착장 옆에 100미터 정도 바다 위를 잇는 긴 출렁다리가 보입니다. 연대도 바로 옆에는 만지도라는 30명 정도 사는 다른 섬이 있는데, 지난 2010년에 연대도가 10대 명품 섬으로 선정되면서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이 두 섬 사이에 다리를 놓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 위를 건너 만지도부터 구경을 합니다.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다리 위를 건너는 것이 자못 스릴있기도 하고 재밌어서 아이들과 사진도 여러 장 찍습니다.
만지도 섬을 한 바퀴 빙 돌아봅니다. 잘 꾸며진 전망대에서 만지도 명물이라는 200년 된 해송도 보고, 높이가 딱 99.9미터라는 만지봉 정상에도 올랐다가 무성하게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룬 곳도 지나가 봅니다. 산에 올라 탁 트인 바다와 섬들을 보니 가슴이 활짝 열리는 기분입니다.
다만, 산행 도중 길가를 보니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호랑이 없는 곳엔 여우가 왕이라더니 맹수가 사라진 대한민국 시골에서는 멧돼지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맹수 노릇을 하곤 합니다. 혹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긴장이 좀 되는 순간.
갑자기 대여섯 마리는 되는 멧돼지들이 떼로 튀어나왔다가 꾸엑 소리를 지르며 도망갑니다. 갑작스런 출현에 저도 적잖이 놀랐지만 멧돼지들은 다행히도 더 놀랐나 봅니다. 저렇게 몰려다니면 위협적이기도 할 테고, 길가뿐만 아니라 밭도 파헤칠 테니 섬 주민들에게는 영 골칫거리일 거다 싶습니다. 이틀 뒤에 다시 치료받으러 오신 어촌계장님 말씀으로는 꽤 잡았는데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군요.
연대도로 돌아와 멋진 석양을 구경하고, 천막으로 된 가건물에서 하는 허름한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앞바다에서 잡은 고기로 회만 한 접시 나오는데, 저도 부산에 살면서 회라면 적지 않게 먹고 살았지만 그것과도 적잖은 차이가 있습니다. 직접 잡은 고기는 더욱더 싱싱해서인지 감칠맛도 더 있고 육질도 훨씬 더 쫄깃합니다.
뒤이어 나온 전갱이 구이와 매운탕으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벌써 배가 불러 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해물라면 맛을 보지 않고 갈수는 없겠기에 2인분을 추가합니다. 전복 작은 거 두 마리에 개운한 라면 국물 맛을 보고 나니 역시 시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든든한 마음으로 방파제에서 낚싯대도 드리워 봅니다. 볼락만을 노리고 두 시간 정도 보내 봤지만 볼락의 천적이라는 샛바람(동풍)이 불고 있어서 다들 도망가 버린 모양입니다. 작은 거 두 마리 이외에는 별 소득이 없는 건 아쉽습니다.
부녀회장님이 소개해 주신 펜션에서 자고 다음날. 배가 오는 시간을 한 시간여 앞두고 연대도 산행을 나섭니다. 같이 간 가족들은 펜션에 두고 혼자서 빠르게 돌아보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펜션 아주머니께 한 시간 정도면 한 바퀴 돌아올 수 있겠냐고 물으니 한 시간 반은 걸린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겐 50분만에 돌아오겠다고 말해뒀는데, 정 시간이 부족하면 가다가 돌아오면 되겠지 싶어 일단 출발은 해 봅니다.
좀 가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서두르면 다 돌아보고 와도 되겠다 싶어집니다. 약속을 지키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늘 강조해왔고 배를 놓쳐선 곤란하니 심리적 압박감이 좀 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좁달막하게 잘 꾸며진 등산로 아래로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조금 시야를 멀리 두면 시리도록 푸른 겨울 바다 위로 다른 섬과 배들이 점점이 떠 있습니다. 이번에 온 김에 보지 않으면 언제 또 볼 수 있는 풍경일까요. 욕심을 부려 발걸음을 재촉해 봅니다.
그러나 섬에 있는 산이다 보니 길이 그리 평탄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조금이라도 평평한 길이 나오면 뛰다시피 속보를 합니다. 결국 숨이 턱에 차오르고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로 돌아와서 시계를 보니 딱 49분이 걸렸습니다. 약속을 했으니 지켰다고 잔소리 들을 일은 없어졌지만, 한 시간 반 거리를 그렇게 서둘러 다녀왔으니 더 움직일 힘도 없을 정도로 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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